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달력에 날짜를 적어두고 기다리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 실적 발표일만큼은 달랐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크게 나온 10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 계획, 주당 2만 원 배당, 그리고 PER 3배라는 숫자 앞에서 제가 배워온 원칙들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 글은 그 시험을 통과하며 정리한 기록입니다.저평가 분석 — 실적과 주가가 정반대로 달리는 이유제가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한동안 멈췄습니다. 사상 최대 실적, 100조 원 환원, 그런데 주가는 고점 대비 55% 하락. 논리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그림이었습니다.여기서 핵심 지표가 PER(주가수익비율)입니다. PER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로, 투자자들이 이 회사의 이익 1원에 얼마를 지불할 의..
주가가 1년 새 470% 넘게 오른 주식을 두고 "아직도 싸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저는 처음에 그냥 홍보 문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뜯어보니 그 말을 허투루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주가와 이익이 달리기 시합을 벌이고 있는데, 이익이 더 빠른 상황이었습니다. 그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 전에 썼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 글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5배 오른 주식이 어떻게 싸다는 건가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이크론의 주가는 최근 1년 사이 473% 뛰었고, 올해 들어서만 273% 올랐습니다. 6월 장중에는 1,255달러라는 사상 최고가를 찍기도 했습니다. 그 뒤 고점 대비 15% 정도 내려온 상태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많이 오른 주식입니다.그런데 미즈..
"미국이 중국 칩을 AI 데이터센터에 안 쓸 테니 한국은 괜찮다"는 말, 저도 반쯤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문가 토론을 보다가 그 안심의 근거가 우리 실력이 아니라 남의 정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중국 메모리 기업 CXMT가 중국 증시 시가총액 1위를 찍었다는 소식, 그리고 그 자리를 빼앗긴 게 마오타이라는 술 회사라는 점이 숫자 이상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풀베팅 vs 관망, 전문가가 싸우는 진짜 이유전문가 두 명이 정반대 의견을 내놓을 때, 저는 예전엔 "누가 맞나"를 먼저 따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토론을 보면서 그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각자가 보는 변수가 다르다는 점입니다.한 쪽의 논리는 시장 안에 있었습니다. AI, 인프라, 반도체 섹터가 충분히 조정을 받..
주가수익비율(PER)이 4배라면 싸다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함정일까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이 4배 수준까지 내려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처음엔 "이 정도면 사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그 직관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PER 숫자 하나가 아니라, 그 숫자 뒤에 숨은 시장의 판단을 읽어야 했습니다.PER 4배, 진짜 저평가인가 아니면 함정인가일반적으로 PER이 낮으면 저평가 종목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PER(주가수익비율)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쉽게 말해 "이 회사가 1원 벌 때 시장이 얼마를 쳐주느냐"를 나타냅니다. 코스피 평균 PER이 대략 10배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4배는 분명 숫자만 보면..
솔직히 저는 반도체 전문가 영상을 틀 때마다 10분도 못 버티고 껐습니다.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서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몇 달 동안 기사를 읽어온 조각들이 영상 안에서 하나씩 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P와 Q, LTA, HBM4—이 단어들이 처음으로 살아있는 맥락으로 들렸습니다. 그 경험을 그대로 풀어보겠습니다.가격 싸움에서 수량 싸움으로 —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제가 이 영상에서 가장 크게 얻어간 개념은 'P에서 Q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여기서 P란 가격(Price)을 뜻하고, Q는 수량(Quantity)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예전에는 칩 한 개 가격이 얼마냐에 따라 기업의 실적이 출렁였는데, 이제는 얼마나 많이 파느냐의 게임으로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솔직히 말하면, 저는 SK스퀘어가 뭘 만드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이 종목 얘기를 들었습니다. 6월에 218만 원을 찍었다가 불과 몇 달 만에 70만 원대까지 내려앉았다는 소식을 보면서, 처음엔 "그 회사 실적이 엄청 나빠진 거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이 회사의 주가 흐름을 이해하려면 엉뚱하게도 다른 회사의 이야기부터 꺼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SK스퀘어의 투자구조, 이 회사는 뭘로 돈을 버는 걸까요?제가 처음 받은 충격은 의외로 단순한 사실에서 왔습니다. SK스퀘어는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파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2021년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해 상장한 투자전문회사로, 주된 역할은 다른 회사의 주식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
뉴스에서 "엔비디아 호실적"이라는 제목을 보면 반사적으로 AI 관련주가 다 오르겠구나, 하고 넘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을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같은 뉴스가 공급망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숫자로 기록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번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그 공부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정리해줬습니다. 매출 962억 달러, 전년 대비 106% 성장. 숫자는 인상적이지만, 진짜 읽어야 할 것은 그 뒤에 있습니다.밸류체인 위치에 따라 같은 뉴스가 다르게 읽힌다이번 발표에서 제가 가장 먼저 눈에 담은 것은 메모리 가격 상승이라는 하나의 현상이 공급망 각 위치에 전혀 다른 항목으로 기록된다는 구조였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장부에는 매출 증가와 협상력 강화로, 엔비디아 장부에는 총이익률(Gross Mar..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금·현금성 자산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합산 278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반년 만에 117조 원이 쌓인 셈인데,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저도 그냥 "크다"는 감탄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업 재무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현금이 많다는 뉴스를 볼 때 이제는 감탄보다 먼저 "이 돈이 다음에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됐습니다.현금흐름을 읽는 법이 달라진 계기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기업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 저는 현금이 많은 회사를 단순하게 좋은 회사라고 여겼습니다. 곳간이 두둑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직관이었고,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여러 기업의 사이클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현금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애플이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메모리 반도체를 아이폰과 맥북에서 테스트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가격 인하 요구를 거절당하고도 검증을 멈추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저는 이것이 단순한 부품 소싱 뉴스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협상의 판이 이미 테이블 밖에서 짜이고 있다는 신호로 읽혔기 때문입니다.협상력은 몸집이 아니라 대안의 수에서 나온다시장 뉴스를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처음에 제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큰 구매자가 항상 갑"이라는 공식이었습니다. 애플처럼 연간 수천만 대를 출하하는 기업이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공급사가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그림 아닌가, 처음에는 그렇게 봤습니다.직접 겪어보니 다른 원리가 작..
지난달 "지금 팔아야 한다"고 했던 기관이 몇 주 만에 "지금 사도 된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모건스탠리가 메모리 반도체 조정을 경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조정이 마무리됐으니 재진입 구간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제가 투자를 처음 시작했을 때였다면 이 보고서를 읽고 주문창을 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먼저 보고서 안의 단서들을 먼저 찾게 됩니다.메모리 사이클, 이번 조정은 어디쯤인가모건스탠리는 2025년 7월 발간한 아시아 기술주 보고서 제목을 '메모리—작은 굴곡(Memory—A Small Bend)'이라고 붙였습니다. 제목부터 의도가 명확합니다. 이번 하락은 업황이 꺾인 신호가 아니라, 업사이클(upcycle) 도중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조정이라는 뜻입니다. 업사이클이란 메모리 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