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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수익비율(PER)이 4배라면 싸다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함정일까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이 4배 수준까지 내려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처음엔 "이 정도면 사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그 직관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PER 숫자 하나가 아니라, 그 숫자 뒤에 숨은 시장의 판단을 읽어야 했습니다.
PER 4배, 진짜 저평가인가 아니면 함정인가
일반적으로 PER이 낮으면 저평가 종목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PER(주가수익비율)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쉽게 말해 "이 회사가 1원 벌 때 시장이 얼마를 쳐주느냐"를 나타냅니다. 코스피 평균 PER이 대략 10배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4배는 분명 숫자만 보면 싸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수치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BNK투자증권 연구원이 지적한 대로, 낮은 PER은 저평가의 증거가 아니라 "이 이익이 오래 못 간다"는 시장의 의심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6월 고점 이후 조정을 받아 7월 이후 30만 원을 회복하지 못했고, SK하이닉스도 6월 고점 이후 크게 하락해 200만 원을 넘지 못했습니다. 주가는 빠졌지만 실적 추정치는 오히려 올라가면서 PER이 낮아 보이는 착시가 생긴 겁니다.
결국 이 논쟁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반도체 호황이 이번에도 꺾이느냐, 아니면 이번 사이클은 다르냐." 장기 공급 계약이 이익을 받쳐준다면 PER 4배는 헐값이고, 과거처럼 호황 뒤 급락이 온다면 4배도 오히려 비싼 가격일 수 있습니다. 어느 증권사 전망이 맞느냐 따지기 전에, 저는 먼저 "싼 데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노트에 써뒀습니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 12개월 선행 PER: 약 4배 수준 (2024년 하반기 기준)
- 낮은 PER의 두 가지 해석: ① 시장 저평가, ② 이익 지속성에 대한 의심
- 신한투자증권 조언: 반도체 대신 비반도체 중 컨센서스 상향 종목으로 시야 확대
미국 국채금리 5% 돌파, 금리가 보내는 신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5%를 넘어섰다는 뉴스는 여러 번 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 금리 수치 자체가 아니라 그 금리에 붙은 역사적 맥락이었습니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US Treasury 10-Year Yield)이란 미국 정부가 10년 만기로 돈을 빌릴 때 내는 이자율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신용에 시장이 매기는 가격표입니다. 1962년 이후 10년물 평균이 5.8%였다는 점(출처: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FRED)을 생각하면, 5% 자체가 역사적으로 이상한 수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2000년대 이후 제로금리에 가까웠던 시절이 예외였던 거죠.
더 인상적이었던 건 전쟁과 금리의 상관관계였습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2003년 이라크 전쟁처럼 미국이 힘을 과시했을 때는 금리가 오르지 않았습니다. 반면 미국이 고전했던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금리가 크게 올랐습니다. 지금의 금리 상승이 단순한 수급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적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해석, 저는 처음 들었을 때 과장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이걸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작년 말 대비 800억 달러, 중국은 664억 달러어치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였습니다. 프랑스, 대만, 한국 같은 우방국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재무부 TIC 데이터). "탈달러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국채 보유 감소라는 숫자로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나니 무게가 달랐습니다. 다른 출처에서 같은 신호가 반복될 때 진지하게 봐야 한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HBM이 만든 역설, 조용히 귀해진 일반 D램
AI 반도체 하면 HBM부터 떠올리는 게 당연한 흐름이 됐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그 화려한 신제품 뒤에서 조용히 벌어지는 일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고대역폭 메모리입니다. AI 모델 학습에 쓰이는 GPU 옆에 붙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HBM 하나를 만들려면 일반 D램보다 웨이퍼를 약 3배 더 써야 하고 공정도 훨씬 길다는 겁니다.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HBM 생산에 자원이 몰릴수록 일반 D램 공급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AI 수요가 HBM을 넘어 일반 서버형 D램과 낸드(NAND)까지 확대될 거라는 것도,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초기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AI 모델이 실제 서비스에 투입되고 에이전틱 AI(Agentic AI, 인간의 지시 없이 스스로 작업을 수행하는 AI)가 등장하면서 추론 단계의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현재는 HBM 생산 증가로 인해 오히려 일반 D램의 웨이퍼당 수익성이 더 높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HBM을 보는 사이, 그 그늘에서 귀해진 것들이 조용히 돈을 벌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응해 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첨단 패키징을 함께 엮는 전략을 강조하고 있으며, HBM4부터는 파운드리 로직 공정과의 결합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두 번째 공장은 2030년 가동 예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삼성전자 PER 4배면 지금 사도 되는 건가요?
A. PER 4배가 싸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매수 신호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이익이 반도체 호황에 기반한 것이라 지속성에 대한 시장의 의심이 낮은 PER로 반영돼 있을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실적 발표들이 이익 지속성에 대한 답을 하나씩 줄 텐데, 그 흐름을 확인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Q.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면 주식시장에 왜 안 좋은가요?
A. 국채금리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확정 수익을 주는 채권의 매력이 높아져 주식 자금이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늘고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를 낮추는 할인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특히 성장주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에 직접적인 압박이 됩니다. 금리는 전 세계 주식의 무게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Q. HBM이 뭔지 쉽게 설명해주세요.
A. HBM(High Bandwidth Memory)은 D램 칩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만든 고대역폭 메모리입니다. AI 연산에 쓰이는 GPU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려면 그에 걸맞은 메모리가 필요한데, 일반 D램으로는 속도가 부족해서 나온 제품입니다. 단점은 만드는 데 웨이퍼가 일반 D램보다 약 3배 더 필요해서, HBM을 많이 만들수록 일반 D램 공급이 줄어드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Q. 컨센서스 변동 방향을 보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컨센서스(consensus)란 여러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추정치를 모아 평균 낸 값입니다. 이 수치는 애널리스트들이 추정치를 수정하는 데 시차가 있어서, 실제 실적이 좋아지더라도 발표 직전까지 낮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컨센서스가 최근 들어 올라가는 방향인 종목은 실제 실적이 시장 기대를 웃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이번에 공부하면서 정리한 원칙이 세 가지입니다. 싼 가격표 앞에서는 "왜 싸게 파는지"를 먼저 물을 것. 전문가가 제시하는 종목이 아니라 전문가가 쓰는 방법론을 훔칠 것. 그리고 큰 흐름은 "붕괴냐 아니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프리미엄이 붙고 깎이는 정도의 문제로 읽을 것.
미국 국채 이야기가 특히 그랬습니다. 세상에 미국 국채만큼 크고 안전한 대체재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흐름은 "달러 붕괴"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자산에 붙던 프리미엄이 조금씩 할인되는 과정으로 읽는 게 더 정확해 보입니다. 그 할인이 금리 상승으로 나타나고, 그 금리가 다시 전 세계 주식 가격의 무게추가 됩니다. 다음 실적 시즌이 다가오는 지금, 저는 HBM 다음으로 조용히 귀해지는 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찾아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