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도체 업황 고점론으로 시장이 흔들리던 8월 초, 서학개미들은 3배 레버리지 ETF인 SOXL을 16억 달러 넘게 팔아치웠습니다. 그런데 지수가 저점에서 25% 넘게 반등하자 이틀 만에 6억 6000만 달러를 다시 사들였습니다. 이 숫자들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시장 전망보다 인간 심리의 패턴 쪽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자금흐름이 말해주는 것 — 숫자로 본 매매 패턴시장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생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매매 동향을 가격 차트와 겹쳐 보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반복해서 확인하게 되는 패턴이 하나 있는데, 이번 데이터도 그 패턴을 정확히 따라갔습니다.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 집계에 따르면, 서학개미들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밀리던..
공시 하나에 하루 만에 주가가 10% 넘게 빠지는 걸 보면서, 시장이 과민반응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 솔리다임 나스닥 상장 논란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건 과민반응이 아니라 학습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증시에서 반복돼온 자회사 분할 상장의 패턴을 시장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쪼개기 상장이 왜 이렇게 민감한가저는 한국 증시를 지켜보면서 자회사 상장을 처음엔 중립적인 재무 이벤트로 봤습니다.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별 생각 없이 넘겼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런데 여러 사례가 쌓이면서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망한 사업부를 따로 떼어내 상장하면, 모회사 주주가 보유한 주식에서 그 사업의 가치..
솔직히 저는 한때 순이익이 크면 무조건 좋은 회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미래에셋증권이 분기 사상 최대인 1조 9052억 원의 순이익을 발표한 날, 열 개 증권사가 일제히 목표주가를 낮췄습니다. 그 뉴스를 보며 제가 오랫동안 놓쳤던 것 — 이익의 크기가 아니라 이익의 구조 — 을 다시 떠올렸습니다.역대급 실적인데 왜 목표주가는 내려갔나투자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손익계산서의 당기순이익 숫자만 보고 "이 회사 잘 나가네"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같은 크기의 이익이라도 시장이 매기는 값이 전혀 다르다는 걸, 실적 발표 후 주가를 반복해서 지켜보고 나서야 몸으로 익혔습니다.미래에셋증권의 2025년 2분기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1조 905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9% 증가한..
2025년 8월, 빌 게이츠가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총리·국회의장·재계 총수를 줄줄이 만나는 일정, 이걸 단순 친선 방문으로 읽으면 놓치는 게 생깁니다. 저는 이 뉴스를 보자마자 "공급망 확보전이 본격화됐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왜 게이츠는 한국 공급망을 직접 챙기러 왔을까테라파워는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와이오밍주 케머러 1호기 건설 허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NRC 건설 허가란 단순한 설계 승인이 아니라, 부지에 실제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설비를 제작·반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의미합니다. 설계 단계에서 제작 단계로 넘어간 것입니다.이 순간부터 테라파워에게 가장 급한 문제는 하나입니다. 원자로 핵심 설비를 기한 내에 실제로 만들어줄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
삼성전자가 하루에 4% 넘게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상승률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같은 외국인이 SK하이닉스를 약 3,000억 원어치 팔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업종, 정반대의 수급. 헤드라인 하나로 "반도체주 강세"라고 묶어버리기엔 그 안에서 돈이 너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상승 뒤에 숨은 수급 분석, 진짜 질문은 "누가 팔았나"주가가 올랐다는 뉴스를 볼 때 제가 반드시 함께 확인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수급(需給) 데이터입니다. 여기서 수급이란 특정 종목을 사고파는 주체별 자금 흐름, 즉 외국인·기관·개인이 각각 얼마나 사고 팔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주가 등락 자체보다 이 흐름이 상승의 성격을 훨씬 잘 보여준다는 걸, 시장을 꾸준히 들여다보면서..
애플이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메모리 반도체를 아이폰과 맥북에서 테스트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가격 인하 요구를 거절당하고도 검증을 멈추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저는 이것이 단순한 부품 소싱 뉴스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협상의 판이 이미 테이블 밖에서 짜이고 있다는 신호로 읽혔기 때문입니다.협상력은 몸집이 아니라 대안의 수에서 나온다시장 뉴스를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처음에 제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큰 구매자가 항상 갑"이라는 공식이었습니다. 애플처럼 연간 수천만 대를 출하하는 기업이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공급사가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그림 아닌가, 처음에는 그렇게 봤습니다.직접 겪어보니 다른 원리가 작..
한 주 만에 시가총액이 791조 원 불어났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주가 자체보다 그 속도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엔비디아가 11.6%의 주간 상승률을 기록하며 세계 시총 1위를 나흘 만에 되찾은 이번 사건은, 지금 시장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머스크 발언의 무게: 말뿐인 응원과 돈이 걸린 약속은 다릅니다이번 상승의 도화선은 일론 머스크의 발언이었습니다. 스페이스X 최초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그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Vera Rubin) 칩 아키텍처를 "최고의 AI 컴퓨터"로 평가하고, 향후 인프라를 엔비디아 제품만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투자를 하다 보면 유명 인사의 발언이 자산 가격을 흔드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하게 됩니다. 저는..
지난달 "지금 팔아야 한다"고 했던 기관이 몇 주 만에 "지금 사도 된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모건스탠리가 메모리 반도체 조정을 경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조정이 마무리됐으니 재진입 구간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제가 투자를 처음 시작했을 때였다면 이 보고서를 읽고 주문창을 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먼저 보고서 안의 단서들을 먼저 찾게 됩니다.메모리 사이클, 이번 조정은 어디쯤인가모건스탠리는 2025년 7월 발간한 아시아 기술주 보고서 제목을 '메모리—작은 굴곡(Memory—A Small Bend)'이라고 붙였습니다. 제목부터 의도가 명확합니다. 이번 하락은 업황이 꺾인 신호가 아니라, 업사이클(upcycle) 도중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조정이라는 뜻입니다. 업사이클이란 메모리 가격..
SK하이닉스가 용인과 청주에 총 54조3000억 원을 투자해 차세대 D램·낸드 생산 기지를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금액보다 날짜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첫 클린룸 가동이 2029년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이건 지금의 호황에 쌓는 베팅이 아니라 3년 뒤를 향해 던지는 베팅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투자 발표를 읽는 법이 달라진 날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는 "수십조 투자"라는 헤드라인이 뜨면 금액의 크기에 압도되어 막연히 호재로 받아들이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기업의 투자 발표와 그 이후를 몇 년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정보는 금액이 아니라, 그 숫자 옆에 조용히 붙어 있는 두 가지 더라고요.그 첫 번째는 시간표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용인 Y2 팹의..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중국이 추격 중"이라는 반도체 뉴스를 절반쯤 흘려들었습니다. 워낙 자주 나오는 표현이라 무뎌진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창신메모리(CXMT)의 DDR5 칩이 AMD와 인텔 양쪽 플랫폼에서 8800 MT/s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번엔 좀 달리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숫자 하나가 아니라, 그 숫자가 만들어진 속도와 주변의 반응이 제 시각을 바꿔놓았습니다.개선 속도: 숫자보다 변화의 기울기가 중요합니다제가 반도체 뉴스를 꾸준히 읽어오면서 가장 크게 바뀐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 위치가 아니라 이동 속도를 먼저 본다는 겁니다. 처음엔 저도 "지금 몇 세대 뒤처졌나"만 찾았는데, 그렇게 읽으면 판단이 계속 흔들렸습니다. 어떤 기사는 격차가 크다 하고, 어떤 기사는 코앞이라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