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달력에 날짜를 적어두고 기다리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 실적 발표일만큼은 달랐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크게 나온 10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 계획, 주당 2만 원 배당, 그리고 PER 3배라는 숫자 앞에서 제가 배워온 원칙들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 글은 그 시험을 통과하며 정리한 기록입니다.저평가 분석 — 실적과 주가가 정반대로 달리는 이유제가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한동안 멈췄습니다. 사상 최대 실적, 100조 원 환원, 그런데 주가는 고점 대비 55% 하락. 논리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그림이었습니다.여기서 핵심 지표가 PER(주가수익비율)입니다. PER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로, 투자자들이 이 회사의 이익 1원에 얼마를 지불할 의..
계좌가 마이너스 40%를 찍던 날, 저는 10년 월봉 차트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봤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봉이나 주봉만 봤는데, 월봉으로 펼쳐 보니 지금 이 폭락이 사실 이 종목의 평소 습관이더라고요. 버티는 것과 방치하는 것은 다르고, 조급함과 확신은 얼굴이 비슷하다는 걸 — 손실을 보고 나서야 겨우 구분하게 됐습니다."버티면 된다"는 말의 숨겨진 조건 — 생존편향어떤 주식이 3만 원에서 6,000원까지 80% 빠졌다가, 5년 뒤 15만 원이 되고 나중엔 42만 원까지 간 사례를 들은 적 있습니다. 처음엔 "버티면 되는구나"라는 교훈만 가져갔어요. 그런데 한 가지를 빠뜨렸습니다. 그 주식이 속한 산업이 경쟁자가 몇 안 되는 과점(寡占) 구조였다는 조건이요. 과점이란 시장 참여자가 소수로 제한돼 경쟁 강..
현재까지 AI 데이터센터에 투자된 금액은 약 1조 5천억 달러, 목표치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제 반응은 "그게 정말이면 지금 겁먹을 때가 아닌데"였습니다. 급락 이후 분위기가 뒤숭숭한 시점에 일부러 반대편 목소리를 찾아 읽었고, 메모리 반도체와 전력이라는 두 병목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숫자와 함께 뜯어봤습니다.AI 투자가 2031년까지 간다는 계산, 믿어도 될까AI 투자 버블 논쟁은 대개 감정 싸움으로 흘러갑니다. "AI는 거품이다"와 "AI는 패러다임 전환이다"가 팩트 없이 충돌하는 구조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접한 분석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새 산업이 등장했을 때 투자는 어디까지 갔나"라는 측정 가능한 질문으로 바꾼 겁니다.논리의 핵심은 이렇..
실적 발표를 기다렸는데 예상을 웃도는 매출에 긍정적인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주가는 6% 급락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공식이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메타의 이번 하락은 "실적이 좋아도 떨어지는" 시장의 새 국면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고들수록, AI 투자비용과 자본조달이라는 문제가 기술주 전체의 새 시험지임을 알게 됩니다.실적이 좋아도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 — AI 투자비용의 역설기사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메타가 향후 각종 임대 및 계약에 따라 지출하기로 약정한 금액이 약 8,2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094조 원에 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출처: Bloomberg)..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가 엔비디아 RTX PRO 5500을 600만 개 넘게 주문했습니다. 금액으로는 47조 원이 넘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최첨단 칩도 아니고, 작년에 비슷한 사양이 나왔을 때 "너무 비싸다"며 외면했던 바로 그 급의 제품에 이 규모의 돈을 쏟아붓는다는 게 단순한 구매 기사가 아니라 중국 AI 산업의 현재 위치를 드러내는 문서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47조 주문서가 드러낸 제재의 성적표이번 주문의 대상인 RTX PRO 5500은 워크스테이션용 그래픽 카드입니다. 엔비디아의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 B300이나 호퍼 아키텍처 기반 H200과는 급이 다릅니다. 여기서 아키텍처란 GPU를 설계하는 기반 구조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반도체의 세대와 ..
이번 주 코스피는 주간 기준 14.4% 하락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폭락 이후 단일 주간 기준으로 가장 큰 낙폭입니다. 같은 한 주를 놓고 기사와 차트 복기 영상을 연달아 봤는데, 숫자는 똑같은데 보이는 것이 달랐습니다. 그 차이가 이번 글을 쓰게 만든 이유입니다.차별화 하락이 말하는 것7월 급락장과 이번 10월 하락장을 나란히 놓고 보니 결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7월에는 거의 모든 종목이 동반 하락했습니다. 공포가 시장 전체를 덮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목별, 섹터별로 낙폭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코스피가 14.4% 빠진 주에 LG에너지솔루션은 0.5% 하락에 그쳤습니다. 같은 폭풍 속에서 이 숫자가 나왔다는 건, 누군가는 그 종목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는 뜻입니다.제..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급락 기사를 읽을 때마다 맥락 없이 숫자에 놀라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코스피가 14.5% 빠지는 걸 보면서는 달랐습니다. 노트에 쌓아온 단편들이 이 기사를 미리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주간 낙폭을 기록했고, 국민연금의 주식 평가액은 석 달 반 만에 182조 원이 줄었습니다. 이 급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제가 정리한 세 가지 틀을 나눠보겠습니다.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딜레마, 안전판이 다친 사연이번 기사에서 제가 처음 제대로 공부한 건 국민연금의 리밸런싱(Rebalancing) 문제였습니다. 리밸런싱이란 포트폴리오에서 자산 유형별 비중이 목표치에서 벗어날 때, 이를 다시 맞추기 위해 사고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빠지는 걸 보면서 소부장 종목까지 같이 털어낸 경험, 저도 있습니다. 그때는 당연한 선택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그게 가장 비싼 실수였습니다. 반도체 대형주가 쉬어가는 구간에 오히려 소재·부품·장비 섹터가 움직이는 이유, 그리고 어닝 쇼크가 터질 때 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는지 — 이 두 가지 역설을 직접 공부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어닝 쇼크가 바닥인 이유, 처음엔 이상했습니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적이 나쁘게 나오는 순간에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는 말이 처음엔 앞뒤가 안 맞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2015년과 2018년, 두 번 모두 반도체 대형주는 실적이 좋을 때 오히려 주가가 먼저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선행 반영(price-in)이었습니다. 여기서 선..
솔직히 저는 자동차 회사 뉴스를 그냥 흘려보내는 편이었습니다. "어디에 공장 세웠다"는 식의 기사는 숫자만 크고 실감이 안 났거든요. 그런데 이번 현대차 푸네 신공장 준공 소식은 달랐습니다. 2032년까지 인도에만 21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계획, 그리고 전기차와 배터리를 넘어 에너지·로보틱스·AI까지 언급된 투자 목록을 보고서야 "이건 단순한 공장 뉴스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21조 원의 인도 투자, 왜 지금인가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든 질문은 딱 하나였습니다. "왜 하필 인도고, 왜 지금일까?" 답은 생각보다 명확하게 정리됐습니다.인도는 현재 인구 약 14억 7천만 명을 보유한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입니다(출처: OICA(국제자동차제조협회)). 세계 3위라는 수치보다 더 중요한 건 성장..
두산테스나 매출의 96.4%가 삼성전자 단 한 곳에서 나옵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이건 투자가 아니라 삼성전자 베팅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조를 뜯어볼수록, 단순한 종속이 아닌 더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검사만 하는 회사가 시총 2조를 넘는 이유두산테스나는 반도체를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이 회사의 일은 만들어진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전기 신호를 보내 확인하는 것, 즉 OSAT(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및 패키징 서비스)에 해당하는 웨이퍼 테스트입니다. 여기서 OSAT란 반도체 칩이 완성된 뒤 패키징과 품질 검사 같은 후공정 전체를 외주로 받아 처리하는 산업을 말합니다.웨이퍼 위에 수백 개의 칩이 피자 도우 위 페퍼로니처럼 붙어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