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칩을 AI 데이터센터에 안 쓸 테니 한국은 괜찮다"는 말, 저도 반쯤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문가 토론을 보다가 그 안심의 근거가 우리 실력이 아니라 남의 정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중국 메모리 기업 CXMT가 중국 증시 시가총액 1위를 찍었다는 소식, 그리고 그 자리를 빼앗긴 게 마오타이라는 술 회사라는 점이 숫자 이상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풀베팅 vs 관망, 전문가가 싸우는 진짜 이유전문가 두 명이 정반대 의견을 내놓을 때, 저는 예전엔 "누가 맞나"를 먼저 따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토론을 보면서 그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각자가 보는 변수가 다르다는 점입니다.한 쪽의 논리는 시장 안에 있었습니다. AI, 인프라, 반도체 섹터가 충분히 조정을 받..
이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모르는 단어가 세 개나 연속으로 나왔습니다. CCL, T-글래스, 닛토보. 하나씩 찾아가며 읽다 보니, 엔비디아와 구글 뒤에 이름도 생소한 일본 유리섬유 회사가 병목으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 보였습니다. AI 반도체 공급망의 가장 조용한 급소, 이 글에서 그 구조를 정리해봤습니다.CCL이 뭔지 몰랐던 제가 공급망을 이해한 순서처음에 "두산 전자BG가 CCL 공장을 증설한다"는 문장을 읽고 멈췄습니다. CCL이 뭔지 몰랐으니까요.CCL은 동박적층판(Copper Clad Laminate)의 약자입니다. 여기서 동박적층판이란,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들 때 기초 재료로 쓰이는 얇은 판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반도체 기판의 '밑판'입니다. AI 반도체가 아무리 고성능이어도 이 ..
뉴스에서 "엔비디아 호실적"이라는 제목을 보면 반사적으로 AI 관련주가 다 오르겠구나, 하고 넘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을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같은 뉴스가 공급망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숫자로 기록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번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그 공부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정리해줬습니다. 매출 962억 달러, 전년 대비 106% 성장. 숫자는 인상적이지만, 진짜 읽어야 할 것은 그 뒤에 있습니다.밸류체인 위치에 따라 같은 뉴스가 다르게 읽힌다이번 발표에서 제가 가장 먼저 눈에 담은 것은 메모리 가격 상승이라는 하나의 현상이 공급망 각 위치에 전혀 다른 항목으로 기록된다는 구조였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장부에는 매출 증가와 협상력 강화로, 엔비디아 장부에는 총이익률(Gross Mar..
솔직히 저는 이번 엔비디아 실적 발표 전까지 "이미 너무 많이 오른 거 아닌가" 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13분기 연속 신기록이라는 타이틀이 무거워 보였고, 발표 전 7거래일 연속 주가 하락이 시장의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는 신호로 읽혔거든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매출 962억 달러, 월가 전망을 40억 달러 이상 웃도는 숫자가 나왔고, 저는 제 예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다만 그 화려한 숫자보다 CFO의 한 문장이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AI 슈퍼사이클, 이번엔 진짜였다저는 실적 발표 전마다 관전 포인트를 세 개씩 적어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번엔 가이던스의 방향, 영업마진의 방어, 차세대 플랫폼의 시간표, 이 세 가지였습니다. 결과는 세 문항 모두 기대를 웃돌았습니다.엔비디아의 2..
솔직히 저는 한동안 삼성전자 주가를 이해하려면 삼성전자 실적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는 27일, 엔비디아의 2027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반기 향방을 사실상 먼저 보여주는 창이 됩니다. 시장 예상 매출은 920억 달러, 전년 동기 대비 90% 성장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시장이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건 그 숫자가 아닙니다.내 종목의 미래가 남의 컨퍼런스콜에 있다는 걸 깨달은 날처음 반도체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저는 기업을 개별 종목으로만 봤습니다. SK하이닉스가 실적을 잘 내면 SK하이닉스 주가가 오르고, 삼성전자가 좋은 발표를 하면 삼성전자가 움직인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
한 주 만에 시가총액이 791조 원 불어났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주가 자체보다 그 속도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엔비디아가 11.6%의 주간 상승률을 기록하며 세계 시총 1위를 나흘 만에 되찾은 이번 사건은, 지금 시장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머스크 발언의 무게: 말뿐인 응원과 돈이 걸린 약속은 다릅니다이번 상승의 도화선은 일론 머스크의 발언이었습니다. 스페이스X 최초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그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베라 루빈(Vera Rubin) 칩 아키텍처를 "최고의 AI 컴퓨터"로 평가하고, 향후 인프라를 엔비디아 제품만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투자를 하다 보면 유명 인사의 발언이 자산 가격을 흔드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하게 됩니다. 저는..
SK하이닉스가 용인과 청주에 총 54조3000억 원을 투자해 차세대 D램·낸드 생산 기지를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금액보다 날짜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첫 클린룸 가동이 2029년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이건 지금의 호황에 쌓는 베팅이 아니라 3년 뒤를 향해 던지는 베팅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투자 발표를 읽는 법이 달라진 날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는 "수십조 투자"라는 헤드라인이 뜨면 금액의 크기에 압도되어 막연히 호재로 받아들이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기업의 투자 발표와 그 이후를 몇 년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정보는 금액이 아니라, 그 숫자 옆에 조용히 붙어 있는 두 가지 더라고요.그 첫 번째는 시간표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용인 Y2 팹의..
애플이 하루 만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줬습니다. 주가는 7.35% 급락했고, 이유는 실적 부진이 아니라 단 한 줄의 전망이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자산이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크게 무너지는 날, 그 당혹감은 꽤 오래 남습니다.안전자산이라는 믿음이 깨지던 날저도 처음엔 애플 같은 종목을 포트폴리오의 '앵커'처럼 다뤘습니다. 앵커(Anchor)란 배가 흔들려도 중심을 잡아주는 닻처럼, 시장이 출렁여도 크게 흔들리지 않으리라 기대하는 자산을 말합니다. 변동성이 낮고 실적이 꾸준하며, 무엇보다 "이건 지수를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안도감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그 종목이 다른 어떤 보유 자산보다 크게 빠지는 것을 봤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